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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키운 농산물 또 갈아엎어…산지폐기 매년 반복 왜?
입력 2019.03.24 (07:00) 취재K
애써 키운 농산물 또 갈아엎어…산지폐기 매년 반복 왜?
"저 아까운 채소를 그대로 버리다니! 저 채소 나한테 주지!" 배추, 무, 양파 등등 채소들이 산지에서 그대로 버려진다는 소식을 접하면 흔히들 나오는 소비자들의 탄식입니다.

"농사가 너무 잘 돼도 문제"…'풍년의 역설' 산지폐기

하지만 채소가 남는다고 해서 그 작물들을 소비자에게 싸게 혹은 공짜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풍년이라 채소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 물량 그대로 시장에 풀리면 가격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죠. 채소 가격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산지에서 수확하고 판매지로 이동시키고 포장하는 비용까지 들이면 더더욱 남는 게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생산자들은 채소 가격이 떨어지면 그대로 현지에서 갈아엎는 산지폐기를 택하게 됩니다. 밭에서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상심이 정말 큽니다.

문제는 이런 산지폐기가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 지속되면서 올봄에 채소 풍년이 들었습니다. 채소 값이 폭락하자 어김없이 전국에서 산지폐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6년 6만 2천 톤의 채소를 버렸고, 지난해에는 7만 4천톤, 올해는 지난해보다 폐기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5년 동안 산지폐기 비용에만 500억 원이 쓰였습니다. 애써 키운 작물들을 버리는 농민도 농민이지만, 버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또 들여야 하는 정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량조절" vs "납품단가" 서로 다른 셈법

정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2017년부터 채소가격안정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정부가 계약을 맺어 재배를 하면, 정부와 지자체 등이 함께 조성한 수급 안정 사업비로 채소 가격을 평년 가격의 80% 수준으로 보전해줍니다. 대신 이 계약에 참여한 농민들은 재배한 채소의 최대 50%까지를 정부 방침에 따라 출하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정부는 채소가격안정제에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풍작, 흉작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 폭락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재 전체 작물의 10%만이 채소가격안정제를 통해 정부와 계약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농민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정부 측, 농협에 납품을 하면 단가가 너무 안 맞는다는 겁니다. 현지 유통 상인들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현저히 낮을 때가 많아서 선뜻 정부와 계약재배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을 경우에는 농협과 계약을 한 것이 큰 손해일 때가 많기 때문에, 폭등과 폭락을 예측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자유롭게 농사를 짓고 개별 유통 상인들에게 파는 편을 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농민들의 불만은 또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 농민들 편을 드는 척하면서 뒤로는 수입 농산물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입으로 안정적인 구매처가 확대되고 있으니 농민들을 제대로 돌볼 리가 있으냐고 강변합니다.

중간에 끼어있는 농협의 입장도 난감합니다. 예산이 넉넉하게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채소 수급을 공공의 영역에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농협이 나서서 채소 수급 조절에 힘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강변하는데요. 이유인즉슨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계약재배 농가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현지상인과 거래하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에 대해 처벌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지역에서 다 아는 사이고, 가격이 변한 걸 뻔히 보고 있는데 더 싼 가격에 가져가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죠. 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재배가 아닌 농가들도 산지폐기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쉽사리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아깝게 버려지는 농산물…악순환 고리 끊어야

해결책은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농민들과 정부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채소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우산' 아래로 더 많은 농민들을 들어오게 하려면 농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수매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농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면 농민들이 풍년의 폭락, 흉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공수급의 영역을 차츰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농민들에 대해서는 이런 조언을 합니다. 계약재배를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충실하게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농민들 스스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와의 계약을 파기하면서 폭락하면 정부가 사주기로 한 계약을 잘 지키라고 요구만하는 행태를 반복하면 농산물 유통 정상화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물론 농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으려면 정부가 관련 예산부터 제대로 확보하고 채소 가격 안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수천, 수만 톤의 양파, 대파, 무들이 밭에서 버려지고 있습니다. 산지폐기는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대안입니다. 시장에서 물량을 없애면 가격은 맞춰질 테니까요.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이보다 더 큰 낭비는 없습니다. 산지폐기의 악순환, 그 고리가 끊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농민들이 지혜를 모으길 기대합니다.
  • 애써 키운 농산물 또 갈아엎어…산지폐기 매년 반복 왜?
    • 입력 2019.03.24 (07:00)
    취재K
애써 키운 농산물 또 갈아엎어…산지폐기 매년 반복 왜?
"저 아까운 채소를 그대로 버리다니! 저 채소 나한테 주지!" 배추, 무, 양파 등등 채소들이 산지에서 그대로 버려진다는 소식을 접하면 흔히들 나오는 소비자들의 탄식입니다.

"농사가 너무 잘 돼도 문제"…'풍년의 역설' 산지폐기

하지만 채소가 남는다고 해서 그 작물들을 소비자에게 싸게 혹은 공짜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풍년이라 채소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 물량 그대로 시장에 풀리면 가격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죠. 채소 가격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산지에서 수확하고 판매지로 이동시키고 포장하는 비용까지 들이면 더더욱 남는 게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생산자들은 채소 가격이 떨어지면 그대로 현지에서 갈아엎는 산지폐기를 택하게 됩니다. 밭에서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상심이 정말 큽니다.

문제는 이런 산지폐기가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 지속되면서 올봄에 채소 풍년이 들었습니다. 채소 값이 폭락하자 어김없이 전국에서 산지폐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6년 6만 2천 톤의 채소를 버렸고, 지난해에는 7만 4천톤, 올해는 지난해보다 폐기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5년 동안 산지폐기 비용에만 500억 원이 쓰였습니다. 애써 키운 작물들을 버리는 농민도 농민이지만, 버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또 들여야 하는 정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량조절" vs "납품단가" 서로 다른 셈법

정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2017년부터 채소가격안정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정부가 계약을 맺어 재배를 하면, 정부와 지자체 등이 함께 조성한 수급 안정 사업비로 채소 가격을 평년 가격의 80% 수준으로 보전해줍니다. 대신 이 계약에 참여한 농민들은 재배한 채소의 최대 50%까지를 정부 방침에 따라 출하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정부는 채소가격안정제에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풍작, 흉작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 폭락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재 전체 작물의 10%만이 채소가격안정제를 통해 정부와 계약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농민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정부 측, 농협에 납품을 하면 단가가 너무 안 맞는다는 겁니다. 현지 유통 상인들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현저히 낮을 때가 많아서 선뜻 정부와 계약재배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을 경우에는 농협과 계약을 한 것이 큰 손해일 때가 많기 때문에, 폭등과 폭락을 예측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자유롭게 농사를 짓고 개별 유통 상인들에게 파는 편을 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농민들의 불만은 또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 농민들 편을 드는 척하면서 뒤로는 수입 농산물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입으로 안정적인 구매처가 확대되고 있으니 농민들을 제대로 돌볼 리가 있으냐고 강변합니다.

중간에 끼어있는 농협의 입장도 난감합니다. 예산이 넉넉하게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채소 수급을 공공의 영역에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농협이 나서서 채소 수급 조절에 힘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강변하는데요. 이유인즉슨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계약재배 농가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현지상인과 거래하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에 대해 처벌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지역에서 다 아는 사이고, 가격이 변한 걸 뻔히 보고 있는데 더 싼 가격에 가져가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죠. 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재배가 아닌 농가들도 산지폐기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쉽사리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아깝게 버려지는 농산물…악순환 고리 끊어야

해결책은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농민들과 정부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채소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우산' 아래로 더 많은 농민들을 들어오게 하려면 농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수매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농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면 농민들이 풍년의 폭락, 흉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공수급의 영역을 차츰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농민들에 대해서는 이런 조언을 합니다. 계약재배를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충실하게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농민들 스스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와의 계약을 파기하면서 폭락하면 정부가 사주기로 한 계약을 잘 지키라고 요구만하는 행태를 반복하면 농산물 유통 정상화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물론 농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으려면 정부가 관련 예산부터 제대로 확보하고 채소 가격 안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수천, 수만 톤의 양파, 대파, 무들이 밭에서 버려지고 있습니다. 산지폐기는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대안입니다. 시장에서 물량을 없애면 가격은 맞춰질 테니까요.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이보다 더 큰 낭비는 없습니다. 산지폐기의 악순환, 그 고리가 끊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농민들이 지혜를 모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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