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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광복절 다시 보는 손기정의 질주
입력 2019.08.15 (07:01) 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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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광복절 다시 보는 손기정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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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40여 km를 쉼 없이 달렸습니다. 힘든 여정을 완주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웃을 수 없었던 마라토너가 있습니다. 시상대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였던 선수, 그래서 '슬픈' 마라토너로 불렸던 고 손기정 선생입니다.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고도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일장기를 가렸던 아픈 역사의 주인공은 그 작은 저항의 행동으로 잠자던 민족 혼을 일깨웠습니다.

"뛰기는 내가 뛰어서 우승했는데 시상대 국기도 일본 국기고 국가도 기미가요.. 참….
국내에서 이기고 질 때는 몰랐는데 국제대회에 출전하니 그 나라 없는 설움이 참."

시상대에 선 그 순간이 지옥 같았다던 그는 올림픽 전부터 일본 국적으로 출전하는 것을 몹시 견디기 힘겨워했습니다.

훈련 중에라도 일장기가 새겨진 유니폼은 절대 입지 않았고, 올림픽 출전을 위해 도착한 베를린에서는 외국인들이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싫어 서명은 영문 이름 옆에 반드시 한글로 '손기정'을 표기했습니다. 더불어 영어로 'KOREAN'이라고 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죠.

해방 이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감독으로 나서 우승을이끌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고 손기정 선생. 1960년대 대한육상연맹 회장과 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스포츠행정에도 이바지했습니다. 1988년에는 76살의 나이에 올림픽 성화 주자로 나섰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누구보다 감격하기도 했죠.

2002년 11월 15일 서거 전까지 살아생전 그토록 원했던 올림픽 공식 기록의 한국 국적과 손기정 이름 명칭 변경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에 손기정 선생의 금메달은 현재까지도 일본의 '기테이 손'이 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2년 향년 아흔 살의 나이로 별세한 손기정 선생은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대전 현충원 국가, 사회 공헌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조국을 위해 달리고 싶었던 손기정 선생은 위대한 한국의 마라토너였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그의 조국을 위한 뜨거운 질주가 담긴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 [영상] 광복절 다시 보는 손기정의 질주
    • 입력 2019.08.15 (07:01)
    케이야
[영상] 광복절 다시 보는 손기정의 질주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40여 km를 쉼 없이 달렸습니다. 힘든 여정을 완주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웃을 수 없었던 마라토너가 있습니다. 시상대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였던 선수, 그래서 '슬픈' 마라토너로 불렸던 고 손기정 선생입니다.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고도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일장기를 가렸던 아픈 역사의 주인공은 그 작은 저항의 행동으로 잠자던 민족 혼을 일깨웠습니다.

"뛰기는 내가 뛰어서 우승했는데 시상대 국기도 일본 국기고 국가도 기미가요.. 참….
국내에서 이기고 질 때는 몰랐는데 국제대회에 출전하니 그 나라 없는 설움이 참."

시상대에 선 그 순간이 지옥 같았다던 그는 올림픽 전부터 일본 국적으로 출전하는 것을 몹시 견디기 힘겨워했습니다.

훈련 중에라도 일장기가 새겨진 유니폼은 절대 입지 않았고, 올림픽 출전을 위해 도착한 베를린에서는 외국인들이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싫어 서명은 영문 이름 옆에 반드시 한글로 '손기정'을 표기했습니다. 더불어 영어로 'KOREAN'이라고 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죠.

해방 이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감독으로 나서 우승을이끌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고 손기정 선생. 1960년대 대한육상연맹 회장과 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스포츠행정에도 이바지했습니다. 1988년에는 76살의 나이에 올림픽 성화 주자로 나섰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누구보다 감격하기도 했죠.

2002년 11월 15일 서거 전까지 살아생전 그토록 원했던 올림픽 공식 기록의 한국 국적과 손기정 이름 명칭 변경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에 손기정 선생의 금메달은 현재까지도 일본의 '기테이 손'이 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2년 향년 아흔 살의 나이로 별세한 손기정 선생은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대전 현충원 국가, 사회 공헌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조국을 위해 달리고 싶었던 손기정 선생은 위대한 한국의 마라토너였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그의 조국을 위한 뜨거운 질주가 담긴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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