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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없어서, 멀어서”…신청보다 포기가 먼저인 그들
입력 2020.06.07 (08:03) 취재K
5월 4일부터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6월 4일 기준 99.3% 수령
보편 복지 사각지대 노숙인들…거주 불명자는 신청 불가능
필요한 건 주거 문제 해결할 현금…대책 마련은 어려워
“주소가 없어서, 멀어서”…신청보다 포기가 먼저인 그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습니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4일까지 31일간 지원금을 받은 가구는 2천156만 가구로 지급 대상 전체 가구 중 99.3%가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수령 가구는 0.7%입니다. 아직 신청을 못 한 가구와 자발적인 기부자들도 있겠지만, 지원금을 받고 싶어도 신청할 방법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편 복지의 사각지대인 노숙인들입니다.

남들은 '클릭'과 '터치'로 손쉽게 신청하지만…

서울 용산역 텐트촌에서 4년째 노숙 생활을 이어온 40대 김 모 씨의 지원금 수령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김 씨에겐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본인 인증 수단은 주민등록증인데 등록지가 전남 보성이라 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갔습니다.

결국, 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신용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지원금을 신청했습니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활동가의 휴대전화 번호를 사용했고, 카드사에는 지원금을 받은 뒤 휴대전화를 개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원금은 받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어렵습니다. 주민등록지가 전라남도 보성군이어서 서울에서는 지원금을 쓸 수 없었습니다. 또다시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왕복 10시간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약을 사고 밥도 먹고 생활용품도 사고, 모든 것을 하루 사이에 해내야 했습니다. 김 씨는 "그래도 나는 남들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거주 불명자"…신청할 마음 먹기보단 포기 먼저

10대 때부터 40년 넘게 노숙 생활을 이어온 임 모 씨는 4년 전 거주 불명자가 됐습니다. 정부는 매 분기 주민등록 사실 조사를 하는데, 이때 실제 거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거주 불명자로 등록됩니다. 임 씨는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지만 신청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습니다.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지원단체들이 지난달 노숙인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지원금을 받은 노숙인은 12명(11.8%)에 그쳤습니다. 주민등록지가 노숙지에서 멀거나(27%) 신청 방법을 모르거나(26%) 거주 불명자라서(23%)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노숙인 대부분은 거주 불명자인데 이들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거주 불명자도 지원금 받을 수 있지만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거주 불명자가 가까운 지방자치단체 주민센터 어느 곳에서든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다음 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지와 거주지가 다른 노숙자들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입니다.

노숙인 지원단체들은 지원금의 존재와 신청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현장 신청을 받아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안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현금 지급을 하고 있고 고령과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찾아가는 신청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노숙인에게도 적용해 달라는 겁니다.


현장의 노숙인들은 입을 모아 가장 필요한 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쪽방과 여인숙 등은 현금 결제만 가능하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아도 노숙을 끝낼 수 없습니다. 김 씨는 "하루만이라도 길거리에서 많은 이들과 부대끼지 않고 내 한 몸 눕히고 씻을 수 있는 방이 간절하다"고 말합니다.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길 위의 삶. 노숙인들이 찾아가지 않은 지원금은 기부금으로 국고 환수됩니다.
  • “주소가 없어서, 멀어서”…신청보다 포기가 먼저인 그들
    • 입력 2020.06.07 (08:03)
    취재K
5월 4일부터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6월 4일 기준 99.3% 수령
보편 복지 사각지대 노숙인들…거주 불명자는 신청 불가능
필요한 건 주거 문제 해결할 현금…대책 마련은 어려워
“주소가 없어서, 멀어서”…신청보다 포기가 먼저인 그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습니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4일까지 31일간 지원금을 받은 가구는 2천156만 가구로 지급 대상 전체 가구 중 99.3%가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수령 가구는 0.7%입니다. 아직 신청을 못 한 가구와 자발적인 기부자들도 있겠지만, 지원금을 받고 싶어도 신청할 방법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편 복지의 사각지대인 노숙인들입니다.

남들은 '클릭'과 '터치'로 손쉽게 신청하지만…

서울 용산역 텐트촌에서 4년째 노숙 생활을 이어온 40대 김 모 씨의 지원금 수령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김 씨에겐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본인 인증 수단은 주민등록증인데 등록지가 전남 보성이라 갈 차비가 없어서 못 갔습니다.

결국, 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신용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지원금을 신청했습니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활동가의 휴대전화 번호를 사용했고, 카드사에는 지원금을 받은 뒤 휴대전화를 개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원금은 받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어렵습니다. 주민등록지가 전라남도 보성군이어서 서울에서는 지원금을 쓸 수 없었습니다. 또다시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왕복 10시간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약을 사고 밥도 먹고 생활용품도 사고, 모든 것을 하루 사이에 해내야 했습니다. 김 씨는 "그래도 나는 남들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거주 불명자"…신청할 마음 먹기보단 포기 먼저

10대 때부터 40년 넘게 노숙 생활을 이어온 임 모 씨는 4년 전 거주 불명자가 됐습니다. 정부는 매 분기 주민등록 사실 조사를 하는데, 이때 실제 거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거주 불명자로 등록됩니다. 임 씨는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지만 신청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습니다.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지원단체들이 지난달 노숙인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지원금을 받은 노숙인은 12명(11.8%)에 그쳤습니다. 주민등록지가 노숙지에서 멀거나(27%) 신청 방법을 모르거나(26%) 거주 불명자라서(23%)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노숙인 대부분은 거주 불명자인데 이들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거주 불명자도 지원금 받을 수 있지만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거주 불명자가 가까운 지방자치단체 주민센터 어느 곳에서든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다음 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지와 거주지가 다른 노숙자들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입니다.

노숙인 지원단체들은 지원금의 존재와 신청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현장 신청을 받아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안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현금 지급을 하고 있고 고령과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찾아가는 신청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노숙인에게도 적용해 달라는 겁니다.


현장의 노숙인들은 입을 모아 가장 필요한 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쪽방과 여인숙 등은 현금 결제만 가능하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아도 노숙을 끝낼 수 없습니다. 김 씨는 "하루만이라도 길거리에서 많은 이들과 부대끼지 않고 내 한 몸 눕히고 씻을 수 있는 방이 간절하다"고 말합니다.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길 위의 삶. 노숙인들이 찾아가지 않은 지원금은 기부금으로 국고 환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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