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공원 앞.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로 노인들이 천천히 걸어갑니다.
아직 다 건너지 못했는데 이미 바뀐 신호.
열심히 걷지만, 빨간불이 되고서야 다 건널 수 있었는데요.
[정화면/서울 종로구 : "몸이 불편하니까 (횡단보도에서도) 조금 늦게 가게 되죠. 그런데 차가 지나가거든요. 그럼 굉장히 불편할 때가 많아요."]
[장금석/서울 종로구 : "(초록 불이) 깜빡깜빡하고 있으면 차는 오고 있지. 그럼 불안하니까 빨리 건널 수밖에 없잖아요. 불안한 맘이 당연히 크죠."]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보폭이 좁아지고 청력이나 시력도 약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반응하고 대처하는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는데요.
[정희원/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 "(노인들에겐) 도로를 건넌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눈과 귀로 들어오는 실시간 정보를 빠르게 취합해서 나의 행동을 바꾼다거나 잠깐 더 시간을 가지고 횡단보도를 건너야겠다는 이런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걷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길을 건널 때도 조바심을 내 더 서두르다 사고를 당하기 쉬운데요.
국내 한 연구진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900명을 촬영해 분석해 봤더니, 65세 이상은 보행 신호로 바뀐 뒤 첫발을 내딛기까지 평균 1.6초가 걸렸습니다.
65세 미만보다 1초 더 빨랐는데요.
그런데도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피는 횟수는 더 적었습니다.
[국명훈/한국교통안전공단 화성체험교육센터 교수 : "(노인들의 경우) 내가 몸이 느리니까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출발해서 오는 차량과 충돌하는 이런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합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사고는 만여 건으로 전체 사고의 28%에도 못 미칩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933명 가운데 558명이 노인이었는데요.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노인인 셈입니다.
그래서 노인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노인들의 통행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해 운영 중인데요.
이 구간에선 차량 속도가 시속 30km로 제한되고 주정차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잘 지켜지고 있을까.
시속 30km 속도제한 표시가 보이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요.
이곳이 노인보호구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백만주/서울 은평구 : "(노인보호구역이라고)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친숙하게 들리기는 해요. 그런데 정확히는 몰라요."]
[김원호/서울 종로구 : "(노인보호구역) 못 봤어, 그런 거. 없어. 눈에 잘 들어와야지."]
불법 주정차 차량도 곳곳에 보이는데요.
시야가 좁은 노인들에겐 더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명훈/한국교통안전공단 화성체험교육센터 교수 : "노인보호구역을 좀 더 확대하고, 단순히 노면 표시만 하고 주의 주는 걸 넘어서서 과속 카메라라든가 강력하게 행정적으로 좀 바뀌어야 할 것 같고요. 노인 보행자 사고가 10시에서 12시, 이런 낮에 주로 많이 발생하는데 그 시간대라도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를 좀 더 길게 줘서 걸음이 느린 고령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65세 이상 노령 인구, 950만 명 시대.
교통약자인 노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와 실질적인 대책, 관리 방법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