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노인들이 많이 오가는 전통시장 주변.
도로 곳곳을 걷는 노인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이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가 하면 다 건너기도 전, 차량들은
이미 출발하기 시작하는데요.
[이숙자/서울시 송파구 : "무섭죠. 건너가려면 마음이 급하니까. 건너기 불안할 것 같으면 그냥 기다렸다 건너요."]
실제로 노인들이 체감하는 보행 환경은 어떨지 확인해 봤는데요.
녹색불이 들어오자마자 출발해도 절반을 조금 지났을 무렵, 신호는 바뀌어
버립니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 겨우 건너는 경우도 많은데요.
교통약자의 평균 보행속도는 1초에
0.8미터.
녹색불이 켜지는 시간은 건널목 1미터 당 1초로 빠듯해 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해야 겨우 건널 수 있는 수준입니다.
국내 한 연구팀이 65세 이상 노인
1,300여명을 조사한 결과 남자와 여자 노인 하위 4분의 1의 보행속도는 각각 1초에 0.6미터, 0.5미터에 그칠 만큼 느렸는데요.
[장일영/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 "노인 4~5명당 1명 정도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 시간에 건너갈 수가 없고 버겁다는 뜻이고요.
걸음걸이가 느려진 노인은 걸음만 느려진 게 아니라 건강 전체, 즉 시청각 기능이라든지 상황에
대한 반응, 민첩성이나 또는 유연성, 근력 이런 다른 기능들이
함께 떨어지고 약해져요. 그래서 같은 크기의 사고를 당해도 아주 크게 다치고요. 대응 능력이 많이 떨어져 사고 확률도 높습니다."]
걷는 속도가 느리다보니 길을 건널 때도 조바심을 내고 더 서두르다 사고를 당하기 쉽습니다.
국내 한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은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로 바뀐 뒤 첫발을 내딛기까지 평균 1.6초가 걸렸는데요.
65세 미만보다 1초 더
빨랐습니다.
게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피는 횟수는 더 적었는데요.
서둘러 건너는 데에만 집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주위를 덜 살피게 되는 겁니다.
[장일영/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 "횡단보도라는 환경 자체가 노인한테는 다소 독특한 환경에 해당되는데요. 빠르게 다니는 자동차가 있고 또 그 자동차들로부터 나오는 여러 소음과 신호등 또는 여러 불빛들이 또 있거든요. 이렇게 노인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들이 특별히 많아서 주의가 분산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도전이고, 또
버거운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교통약자인 어린이에 비해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나 보호는 부족합니다.
실제 신호등 주기를 늦추고 과속 방지턱이나 안내판을 설치한 노인 보호구역 ‘실버존’은 서울의 경우 160여 곳에 불과한데요.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사고 예방을 위해 노인 보호구역엔 관련 표지판이나 도로 노면표시 등이 설치돼 있지만 이를 무시하는 차량이 대부분인데요.
모든 차량이 시속 30km 이하로 달려야 하는 실버존.
과연 차량들이 규정 속도를 잘 지키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10여 분 동안 차량 수십 대가 지나갔지만 규정 속도를 지킨 차량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김종민/서울시 보행정책과
교통전문관 : "어르신들 통행이 잦은 경로당, 복지관, 요양원 등 총 163개소에 대해서 실버존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불법 주정차, 신호 위반과 같은 교통법규 위반 사항에 대해서 과태료가
2배로 부과되고 있습니다. 운전자들은 어르신들의 보행 안전을 위해 좀 더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면서 안전운전하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령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는 점을 감안해 지금보다 노인보호구역을 늘리고 차량들의 통행속도 제한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